이전 포스팅에서는 데지레의 아기(Desiree's Baby)의 작가인 케이트 쇼팽(Kate Chopin)과 데지레의 아기의 줄거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포스팅 참고: helpmyself.tistory.com/4
이번 포스팅에서는 데지레의 아기의 등장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작품을 조금 더 깊게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지레의 아기 등장인물
(등장인물이 나열된 순서는 데지레의 아기가 흑인 혼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서입니다.)
1. Zandrine : L'Abri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입니다. 피부는 백인처럼 하얗지만 흑인의 피가 섞여 있어 흑인 노예로 일하고 있습니다. 데지레의 바로 옆에서 그녀의 아이를 돌보는 보모 역할을 합니다(예전 흑인 노예들은 피부가 하얄수록 주인을 더 가까이서 모셨다고 합니다). 데지레의 아이에게 흑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통찰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2. Madame Valmonde : 데지레의 양어머니이며 백인입니다. 길에 버려져 있던 사랑스러운 데지레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데지레의 모호한 출생에도 그녀를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데지레의 아이에게 흑인의 피가 섞여있다는 사실을 두 번째로 눈치챕니다. 데지레를 방문한 Madame Valmonde는 "Baby is not right."라고 말하며 데지레에게 아이의 피부색에 대한 언질을 주지만 행복에 젖어있던 데지레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3. Armand : 데지레를 보고 첫눈에 반한 그녀의 남편입니다. 데지레를 너무나 사랑해 그녀가 길에서 데려온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합니다. 그러나 그녀와 낳은 아이가 흑인 혼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에 대한 사랑은 철저하게 식어버립니다. 그는 흑인 노예들에게 관대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흑인 노예들에게 철저한 주인으로 군림하며 그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인물입니다. 아이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세 번째로 눈치챕니다.
4. Desiree : Madame Valmonde가 길에서 데려와 딸로 삼았습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순수한 여인입니다. 그녀의 모호한 출생까지 덮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자신의 남편 Armand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Armand의 태도 변화에 슬퍼하던 도중 그녀의 아이가 흑인 혼혈이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아이가 혼혈임을 알게 됩니다.
데지레의 아기 분석
데지레의 아기(Desiree's Baby)는 미국의 남부 루이지애나를 배경으로 하는 케이트 쇼팽의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인종과 여성에 대한 무거운 문제를 짧은 단편 속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실시되던 시대에 사람들은 흑인의 피가 조금만 섞여있어도 그것을 저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아주 심각하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와 함께 쇼팽은 남편의 허락과 인정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게 되는 그 당시 미국 여인들의 문제 또한 그려냅니다. Armand는 데지레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지만 그녀와 자신의 피가 섞인 아이가 흑인의 피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쫓아냅니다.
자신의 집에서 나가 달라고 말하는 Armand에게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데지레는 아이와 함께 집을 떠납니다. 그러나 사실 흑인의 '저주받은 피'가 섞여있었던 것은 사실은 흑인을 누구보다도 혐오하는 Armand 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를 자아냅니다. 혼혈 아이의 아버지인 Armand는 그의 아내 데지레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지만 사실 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Armand의 모습은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아내가 흑인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던 그의 아버지와는 확연히 대비됩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경우 데지레도, Armand의 어머니도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남편의 결정에 따라 그녀들의 삶의 모습은 결정됩니다.
사회에 뿌리 깊은 차별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기의 미국인들은 흑인을 저주받은 인종이라 여기며 그들을 배척하고 멸시했습니다. 현재 이러한 차별은 그 당시처럼 노골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데지레의 아기 속 여성의 삶 또한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그저 사랑스럽고 수동적이며 남편의 결정에 의해 삶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그녀들의 유일한 욕망은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폭력(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행하는 Armand의 폭력의 대상이 사실은 그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소설의 아이러니를 두드러지게 합니다.
데지레의 아기(Desiree's Baby)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소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케이트 쇼팽의 소설이 발표된 1893년에서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차별이라는 폭력은 조금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우리의 삶에 침투해있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해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항상 Armand의 아이러니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차별의 주체인 동시에, 얼마든지 차별의 대상 또한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항상 나를 차별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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